陟州東海碑
(척 주 동 해 비)
州는 古悉直氏之地로 在穢墟南하여 去國都에 七百里며
東臨大海라. 都護府使 孔巖 許穆이 書하노라.
瀛海漭瀁에 百川朝宗하니 其大無窮이라.
東北沙海에 無潮無汐하여 號爲大澤이라.
積水稽天에 渤潏汪濊하니 海動有曀로다.
明明暘谷은 太陽之門이니 羲伯司賓이로다.
析木之次요 牝牛之宮은 日本無東이로다.
鮫人之珍과 涵海百産이 汗汗漫漫이로다.
奇物譎詭와 宛宛之祥이 興德而章이로다.
蚌之胎珠는 與月盛衰하며 旁氣昇霏로다.
天吳九首와 怪夔一股가 颷回且雨로다.
出日朝暾은 轇軋炫煌하니 紫赤滄滄이로다
三五月盈은 水鏡圓靈하니 列宿鞱光이로다
扶桑砂華와 黑齒麻羅와 撮价莆家로다
蜒蠻之蠔와 爪蛙之猴와 佛齊之牛로다
海外雜種과 絶黨殊俗이 同囿咸育이로다.
古聖遠德에 百蠻重譯하여 無遠不服이로다.
皇哉熙哉라 大治廣博하여 遺風邈哉로다.
이 비석은 조선 현종 2년(1661) 삼척부사 허목(許穆 1595∼1682)이 세웠다.
허목은 퇴계선생의 성리학을 이어받아 실학의 발전에 가교적 역할을 한 분으로
효종의 初喪에 대한 母后의 복상기간이 논의되자 西人 宋時烈 등의 기년설을 반
대하여 南人의 선두에서 3년설을 주장하다가 강원도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당시 삼척은 海波가 심하여 潮水가 읍내에까지 올라오고 홍수 때는 오십천이 범
람하여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은 신비한 뜻이 담긴
이 '東海頌(동해송)'을 지어 독창적인 古篆字體로 써서 정라진 앞의 만리도에 이
비를 세우니 조수가 사라지고 바다가 조용해졌다.
후에 비가 파손되어 조수가 다시 일자 1710년에 이를 模寫하여 현재의 육향산에
세워 조수를 막았다. 이 비는 문장이 신비하여 조수를 물리치는 힘을 가졌다 하
여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불리는데, 비문의 전서체(篆書體)는 동방 제일의 필치
라 일컬어지는 허목의 독특한 서체로도 유명하다.
중1때(1969년) 작고하신 祖父님께서는 매일 아침 5시경이면 기상하셔서 이 비
문과 宋나라 때 蔡沈(1167~1230)이 쓴 '書經集傳'의 序文을 암송하시곤 하셨는
데,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나에게 물려주신 그 비문을, 40여년만에 祖父님을
회고하며 여기에 옮겨 봅니다. (모~모)
眉叟 許穆 선생(1595~1682)
書經集傳 序文 (蔡沈)
慶元己未(1199)冬에 先生文公(朱熹)이 令沈으로 作書集傳하라하시
고 明年에 先生이 歿하시거늘 又10年에 始克成編하니 總若干萬言
이라.
嗚呼라! 書를 豈易言哉리오. 2帝3王의 治天下之大經大法이 皆載此書하니 而淺見薄識으로 豈足以盡發蘊奥며, 且生於數千載之
下하여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이 亦已難矣라。然이나 2帝3王之
治는 本於道하고 2帝3王之道는 本於心하니 得其心則 道與治를
固可得而言矣리라。何者오? 精一執中은 堯.舜.禹 相授之心法也요 建中建極은 商湯.周武 相傳之心法也요 曰德.曰仁.曰敬.
曰誠은 言雖殊而 理則一이니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라。
至於言天則 嚴其心之所自出이요 言民則 謹其心之所由施니
禮樂敎化는 心之發也요 典章文物은 心之著也요 家齊國治而天
下平은 心之推也니 心之德이 其盛矣乎인저! 2帝3王은 存此心者
也요 夏桀商紂는 亡此心者也요 太甲成王은 困而存此心者也니
存則治하고 亡則亂하여 治亂之分은 顧其心之 存不存如何耳라。
後世人主 有志於2帝3王之治인댄 不可不求其道요 有志於2帝
3王之道인댄 不可不求其心이니 求心之要에 舍是‘書’면 何以哉
리오!
沈이 自受讀以來로 沈潛其義하고 參考衆説하여 融會貫通하여
廼敢折衷하되 微辭奥旨는 多述舊聞하고 二典禹謨는 先生이 蓋
嘗是正하시어 手澤이 尚新하니 嗚呼惜哉라! ‘集傳’은 本先生所
命故로 凡引用師説하고 不復識지别하였다。4代(虞夏商周)之書
를 分為6卷하였으니 文以時異나 治以道同이라。聖人之心이 見於
書는 猶化工之妙著於物이니 非精深이면 不能識식也라。是傳也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이면 雖未必能造其微나 於堯舜禹湯
文武周公之書를 因是訓詁하면 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리라。
嘉定己巳(1209) 3月既望(음16일)에 武夷 蔡沈이 序하노라。
蔡沈 (1167~1230)
마음 / 정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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