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ssues

아! 6.25, 어찌 잊으랴!!

모~모 2012. 6. 23. 21:03

 

 1950년6월25일(일요일) 새벽,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 공산군들, 벌써 인공기를 꽂았군요!!   

 

 

                                                

 

 

                 아! 6.25, 어찌 잊으랴!!

 

         6.25 동란 기념식 때마다 불렀던 <6.25 노래>.

        친적(親敵) 정권 10년간, 이 노래는 적(北韓)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하마터면 영원히 잊혀질 뻔 했던 민족의 한이 맺힌 이 노

        래.  이제 그 정권들은 호국 영령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모두 꺼졌으니

        '6.25 노래'를 마음껏 불러보자.  공산 깡패집단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우

        리의 역사가 있는 한, 잊을 수 있으랴!!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북녘과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적의 잔당

       들은 정의의 심판에 따라 조속히 청소해야 할 민족최대의 과업이다!

    

        6.25 노래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갚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인천상륙작전으로 공산군들이 퇴각하면서 집단 살해한 양민들. (1950. 9. 28. 충남 대전, 400여구)   

 

 

폐허가 된 대전 시가지(1950. 9. 30)

 인천으로 상륙한 유엔군 때문에 보급로가 끊기면서 생포된 공산군들 (1950. 9. 26. 서울 근교) 

 퇴각하다 파괴된 공산군 탱크와 탱크병의 시신 (1950. 8. 13, 경북 왜관 북쪽 인동)  

 유엔군이 짚단으로 차량을 위장하고... (1950. 7. 12. 남한의 어느 시골)  

 퇴각하는 공산군이 불을 지른 남한의 아곡 마을 (1950. 8. )  

 유엔군이 생포한 공산군 2명을 호송하고 있다(1950. 9. 2. 용산)

 인천상륙작전 직후 인천 해변에 내려진 병력과 장비들. (1950. 9. 15)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1950. 9. 19. 인천) 

 총탄에 쓰러진 남편을 붇들고 (1950. 9. 서울)  

 유엔군의 공수 낙하병 투입 (1950. 10. 20. 평안남도 숙천)  

 원산항으로 진격하는 유엔군 상륙정들 (1950. 10. 26. 함경남도 원산)

 농가에 숨어있다가 유엔군에 투항하는 공산군들 (1950. 11. 16. 평안북도 구성)

전쟁으로 앙상하게 불타버린 남한의 산 (1950. 10. 22) 

공산군이 퇴각하면서 살해한 남한 양민들의 시신. (1950.10. 19. 두배리 금봉산 탄광속 60여구)      

 마을은 불타고 들길에는 피난민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1950. 8. 25. 남한 어느 시골)

 

 

거리에 나딩구는 유엔군 시체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자,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건너 유엔군과 함께 남하하는 평양 시민들.  

 유엔군에 투항한 중공군들. 누비옷에 발싸개 신발을 신고..(1950. 12. 9. 평안도 고토리)   

모유엔군과 한국군의 시신 위에 눈이 덮여있다 (1950. 12. 8. 평안도 고토리)    

중공군 시체들, 찢어진 옷에선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른다 (1951. 5. 17. 춘천)   

 눈속에 묻힌 시신의 두 손과 마지막으로 숨쉬던 숨구멍.(1951. 1. 27. 양지)  

 어선을 탈취해 도망가다 투항하는 공산군들 (1951.5. 10)  

산더미처럼 쌓인 박격포와 각종 포 탄피들(1953. 6. 18) 

지친 표정으로 탱크앞에서 동생을 업고있는 한 소녀 (1951, 6, 9,  행주)  

  

                        <美 국립문서보관소 자료 입수>

연합뉴스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해온 '뉴욕타임스 자료'를 입수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에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남북이 분단돼 각자 선거를 치르거나 공산 게릴라와의 전투에 시달리는 모습에서부터 전쟁발발 직후 남한을 구하기 위해 미 정부의 수뇌부와 유엔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국전쟁 발발 다음날,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북한의 전면남침 사실을 전해들은 워싱턴과 유엔도 긴박해진다.

초대 주미대사인 장 면씨는 서울의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의 남침 사실을 전해듣고 급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열리던 유엔본부를 찾아가 노르웨이 출신 초대 유엔사무총장을 만나 전쟁 발발 사실과 한국의 절박한 상황을 애절하게 호소한다.

미주리주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고 있던 트루먼 미국 대통령도 한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워싱턴으로 되돌아온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는 미국 기자들을 불러 한국지도를 펼쳐놓고 다급하게 전쟁 상황을 브리핑한다. 제대로 된 장비하나 없이 다급하게 설명하는 당시 한국대사관 장건상 중령의 모습은, 나라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길 수 밖에 없었던 힘없는 나라의 설움도 함께 엿보인다.

눈깜짝할 사이에 서울이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전쟁상황이 더욱 다급해진 6월27일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을 구하기 위해 미군의 참전사실을 공식 발표한다.

미국의 재촉 속에 UN안보리는 6월27일 회의를 속개하여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병력파견에 관한 결의안을 표결에 부친다. 이집트와 인도가 찬성했고, 당초 우려했던 유고슬라비아는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공군, 한국전쟁 참전까지 숨가쁜 순간들>

한편 중국혁명군사위원회 주석 모택동(毛澤東)은 1950년10월8일 중국인민지원군 편성에 관한 명령을 내린다.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을 처음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중공군이 국경을 넘어 전장에 투입된 것은 10월19일이었다. 이는 참전을 둘러싸고 참전을 애걸하는 김일성과, 미국이라는 존재를 의식해야 하는 중국, 또공산권 맹주였던 소련 사이에 뭔가 긴박한 움직임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부분이다.

중국 총리 주은래(周恩來)는 스탈인에게 중공군의 참전시 소련이 폭격기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소련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만큼 당시 중국의 공군력은 약했음을 알 수 있고, 소련의 참전여부가 중국의 참전개시를 좌우하는 변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국은 당시 자체 화력으로는 미군을 상대할 수 없음을 예상하고 소련의 지원을 확실하게 보장받는데 주력했었다. 실제로 평양-원산 라인을 지키지 못할 경우 중국의 참전을 유보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으로도 보인다.

중국이 한국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것은 10월1일 밤이었는데, 이날은 한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이다.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급반전되면서 북한군이 줄행랑에 정신없던 상황에서 중국은 참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김일성 또한 중국 측에 신속한 참전을 독려하였다. 어쨌든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1953년7월27일 판문점에서 UN군 총사령관 클라크와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자는 김일성과 중공군 사령관 팽덕회였다.

 

 

                      <유엔 참전국>

◆ 병력 지원국 : 16개국

1 미국(178만명), 2 영국(5.6만명), 3 캐나다(2.5만명), 4 터키(14,936명)

5 호주(8,407명),  6 필리핀(7,420명), 7 뉴질랜드(3,794명), 8 네덜란드(3,522명), 9 태국(1,294명), 10 에티오피아(1,271명), 11 그리스(1,263명), 12 프랑스(1,119명), 13 콜롬비아(1,068명), 14 벨기에(900명), 15 남아공(826명), 16 룩셈부르크

(44명)

◆ 의료 지원국: 5개국

17 인도, 18 이탈리아, 19 노르웨이, 20 덴마크, 21 스웨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