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姉(누나)' 村田純子씨는?
1981년 군 복학후 대학시절, 해외 단파방송을 즐기던 나는 '일본단파방송'의 일본어 프로도 자주 들었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진행하는 "뉴스 올 나이트(ニュ-ス オ- ルナイト)"란 세계뉴스 프로그램은 몇 명의 여자 아나운서가 매일 번갈아가며 진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목요일 담당이던 무라타 쥰꼬(村田純子) 아나운서의 맑고 깜찍한 목소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심야 시간대에 생방송으로 진행할 리는 없겠지만, 2시간 동안이나 계속되는 그녀의 깜찍한 목소리는 심야에 라디오 다이얼을 미세하게 돌려가며 세계 각국의 새로운 방송을 찾아 다니는 나의 다이얼을 종종 잡아끌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깜찍한 일본어 방송을 듣다가 깊은 밤 책상 앞에서 이어폰을 낀 채 스르르 잠이 들곤 하였다.
한번은 수신보고(受信報告) 형식을 빌어 그녀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이토록 깊은 심야에 장장 2시간 동안을, 숨도 쉬지않고 물도 안마시며, 변함없이 깜찍한 목소리로, 어떻게 그런 맑은 방송을 계속하실 수 있나요? 만약 저의 이 편지를 소개해 주시려면 다음주 수요일에 소개해 주세요. 그날 잠 안자고 방송 들을게요."
그랬더니 그 다음주 화요일에 그녀에게서 '국제특급우편'으로 답장이 왔다. 내용인 즉,
“저는 매주 목요일 담당이니 제 방송을 들으려면 수요일이 아닌 목요일 밤에 들어주세요”였다.
역시 일본인다운 면모다 싶었다. 내가 수요일 밤에 기다릴까봐 그 이전에 초특급으로 답장을 보낸 것이다. 그녀는,
"반갑고 놀랍군요. 저의 몇 년간의 아나운서 생활중 외국인이 일본어로 쓴 편지를 받기는 이번에 모ㅇㅇ님이 처음이랍니다. 제 인생에 오랫동안 기억될 거 같군요."라는 소감도 피력하였다.
그런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녀가 쓴 무척이나 아름답고 향기로운 편지지였다. 나는 일찍이 그렇게 아름다운 편지지를 국내에서는 본 적도 없거니와, 편지지에서 풍기는 그윽한 꽃향기는 마치 방안에 향수라도 뿌린 듯 몇 달 동안을 내 방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그런 매혹적인 답장에 25살 꽃다운 나이의 나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멍~해져서 그녀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제가 지금까지 몇년간 세계 각국에서 편지를 받아보았지만 이렇게 매혹적인 편지는 처음이랍니다. 저 역시 村田씨의 아름다운 편지지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군요. 실례일지 모르지만 村田씨의 나이와 주소를 여쭤봐도 될까요?"- ???ㅎㅎ -
며칠이 지나 그녀의 두 번째 답장이 왔다.
"저는 모ㅇㅇ님보다 姉(누나)이고 지금은 결혼하여 東京에 살고 있답니다”
Oh! my God! 내가 물어본 건 그녀의 나이와 집주소였는데! 민감한 질문에 약간 빗나간 듯한 대답을 하는 것은 한국 여성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그런데 그녀의 두번째 편지지의 매혹스러움은 첫번째 것보다 더 심하여 편지지 바탕의 은은한 장미꽃 문양은 나의 가슴을 더욱 흔들어 놓았고, 거기서 풍겨 나오는 그윽한 장미 향기는 그 후 몇 년간이나 더 지속되었는데... 나중에 나는 아내와 결혼 직후 그 편지들을 모두 찢어버렸다. 혹시 아내가 오해라도 할까봐. ㅠㅠㅠ
어언 27년이 지난 금년 초, 나는 문득 '누나(姉)'라고 자칭했던 그녀 생각이 나서 인터넷에 들어가 '日本短波放送'을 검색하였더니, 그 방송국은 2004년에 'ラジオ(Radio) NIKKEI'라고 社名을 바꾸었고.. '청취자 질문' 코너에 들어가 "27년전 村田純子 아나운서를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렸으나 여태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는 걸 보면, 요즘은 일본인들의 서비스 정신도 옛날만 못한걸까 하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두어 달 이내에 "찾아보았으나 행방이 묘연합니다." 정도의 답변이 있을 법도 한데! 안타깝구료.ㅎㅎ
- 2008년 5월의 따스한 봄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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