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방문기(1990년)
이 글은 제가 여행사 근무시절인 1990년12월말, 국내 관광객들과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나서 썼던 기행문으로, 당시 회사 사보에 올렸던 글 중 일부 발췌합니다. (모~모).
* 이스라엘 방문시기 : 1990. 12.29 부터 4일간.
*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 : 미국과 이라크의 사담후세인 정권간에 1차 걸프전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인접 이스라엘은 불똥이 튈까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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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에 입국.
* 파리(Paris)에서 에어프랑스편으로 이스라엘에 입국하기 위해 다소 까다로운 공항검색
을 받으면서부터 상황은 짐작할 수 있었으나, 막상 텔아비브(Tel Aviv)공항에 도착해 보니
긴장감보다는 의외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출국전 걱정했던 비자문제는, 한국인에게 비자없이 3개월간 체재가 가능함을 알고 안도
하였으나, 차후에 있을지 모를 아랍권국가 여행을 위해서는 여권에 이스라엘 입국 스탬프를
찍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건데, 깜박잊고 공항을 나와보니 여권에 이미 벤구리온
(Bengurion) 공항 스탬프가 찍혀 있는게 아닌가? 다행히 이번 스케쥴에 아랍국가는 포함되
지 않았지만, 일부 손님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고 다소 언짢은 표정이었다.
*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과의 적대관계는 여기서부터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기착 혹은 착륙하는 항공기는 국적불문하고 아랍국가 상공을
통과할 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이번 여행코스에 대해 어떤
손님이 제기한 이의 : 왜 코스를 서울→동남아→이스라엘→유럽 순으로 잡지않고,
서울→알래스카(북극)경유→프랑스→이스라엘→다시 유럽순으로 잡았느냐는 의문에
설득력있는 답변을 할 수가 있었다.
* 파리에서 이스라엘로 오는 항공기(에어프랑스) 안에서 기내식사할 때의 에피소드 한마디.
여느 기내식과는 달리 스튜어디스들이 유별나게 승객들의 종교를 캐어 묻는다.
유태교냐, 그리스 정교냐, 회교냐, 인도 힌두교냐? 식으로 손을 들어 보란다. 내가 아무 쪽
에도 손을 안들었더니 스튜어디스가 다가와서 무슨 종교냐고 묻길래 "무(無)종교"라고 대답
했더니 의아하다는 눈으로 킬킬거린다.
왜 그렇게 승객들의 종교를 자세하게 따지냐고 내가 물었더니,
각 종교마다 금식하는 음식이 달라서 그렇단다. 예를들면 유대교와 그리스 정교는 ㅇㅇ고기,
ㅇㅇ양념을 안먹고, 회교도는 돼지고기, 힌두교는 쇠고기 등등....
나는 어떠냐고 묻길래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건 우슨 음식이든 다 먹는다"고 했더니 또한번
킬킬 웃는다.
2. 사실상의 수도인 텔아비브.
* 텔아비브에 도착하여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는데 300실이 넘는 호텔이 우리일행 13명
외에는 전혀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이라크가 1차 걸프전을 벌이기 직전이라서 관광객이
뚝 끊겨 버린 것이다. 겁없는 우리일행 외에는......
* 이스라엘이 위도상으로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지중해성 기후라서 겨울날씨가 온화한 편인
데도 밤에 난방을 가동하지 않으니 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측
에 왜 난방을 가동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더니, "난방방식이 중앙 난방식인데 당신들 겨우 7개
방을 데우기 위해 300실 전체를 난방할 수는 없지 않느냐?" 는 것이다. 정말 우리일행 외에
는 전혀 손님이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렇겠다 싶어 일행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 아침 8시가 지나자 호텔앞으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특이한 것은 초등학생
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총을 메고 등교하는 것 아닌가! 대략 짐작이 가긴 했지만.......
한 여자 어린이는 총 길이가 자기 키보다 더 길어서 개머리판이 땅에 질질 끌리길래 내가
다가가서 몇마디 질문을 했다.
"왜 총을 메고 다니지?"
"사담 후세인이 우리나라를 공격하면 싸울려고요"
"어른들이 싸우면 되잖아?"
"우리는 아랍국가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적어요. 우리국민 모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해요.
이땅을 버리면 우리는 살 곳이 없어요"
맞는 말이다. 어린 애들조차 이런 생각이니..... 이스라엘이 그 혹독한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을 이해할 만 하다.
예수 시대에 십자군에 나라를 빼앗긴지 2,000여년이 지난 금세기까지도 조국수복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가 결국 1948년에 "이스라엘"을 건국 하지 않았던가!
3. 물이 귀한 나라.
* 일행을 실은 버스는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향해 달린다. 차창밖으로 소나무 비슷한 나무가
가끔 보이는데, 마치 물오른 오뉴월 소나무의 밑동을 반쯤 잘라 놓은 것처럼 잎이 시들어
생기가 없어 보인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스라엘에서 특수개량한 소나무로 년중 비가 몇방울
만 내려도 살 수있는 사막성 소나무라고 한다. 하지만 소나무 외에 잔디나 거의 모든 나무는
땅속에 관을 묻어 인공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자생하는 잔디나 나무는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물이 귀한 나라다.
* 동쪽으로 요르단과의 국경지역에 갈릴리해와 사해가 요르단강으로 연결되어 호수를 이루고
있지만 염수라서 식수로 쓸 수가 없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국경지역에 지하 수백미터의 관
정을 뚫고 지하수를 퍼올려 식수와 농업용수로 쓰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동쪽 요르단 지역에선
모든 샘물이 고갈되어 식수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국력이 약해서 이스라엘에 대항할 수
도 없고........ 물이 귀하다 보니 가정의 오수는 4차,5차까지 정화하여 재활용하는데, 그야말
로 공중으로 증발하는 물 외에 버려지는 물이라곤 거의 없단다.
* 사해(死海, Dead Sea)는 그리 크지않은 호수에 불과하나 수면이 지구 해수면보다 300m
이상이나 낮아 물이 나갈 데가 없고, 염분농도는 보통 바다보다 두배이상 높아 사람이 들어
가도 수면에 뜨게된다. 그리하여 이름도 "죽음의 바다, 死海" 란다.
나는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그들이 성지(holy land)라고 부르는 이나라 국토가 이 정도라면,
대한민국은 얼마나 上성지인가! 이런 척박한 나라를 여행하고 나면 내조국 강토에 대한 고
마움과 애국심이 저절로 솟아난다.
4.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성.
* 베들레헴은 예수의 탄생지로 2,000여년전 예수가 탄생할 당시의 핏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
었다. 주변의 건축물들은 예수시대에 석회석으로 지은 것들인데, 수천년의 풍파에도 외부만
약간 손상됐을 뿐 아직도 웅장한 자태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고대 유대인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예루살렘 성>은 우리나라의 동(洞)정도 되는 작은 면적안에, 네개의 서로다른 종교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기독교, 회교(Islam), 아르메니아, 유대교 구역등. 유태교와 회교(Islam)구
역 사이 경계를 이루는 곳에 "통곡의 벽"이 있는데, 예수시절 유대인들이 세운 거대한 성전을
그후 회교도들이 점령하여 허물고, 그 자리에 바위돔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사원주위
는 회교구역에 속하여 그곳에 팔레스타인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고, 그 아래 돌로쌓은 절벽
(사원의 기단에 해당) 아래는 유대교 구역이어서 유대인들이 "우리의 성전은 어디로 갔나?"
고 애통해 한다 하여 <통곡의 벽>이라 부른다. 벽의 돌틈사이에 소원을 비는 쪽지를 끼워두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나도 소원을 한마디 써서 끼워넣었다. 지금도 양측간에 무력충돌이
자주 일어나는 위험지대이다.
<예루살렘 성>의 4종교구역
5. 영토분쟁.
* 유대인들은 십자군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노예 등으로 세계각지에 뿔뿔이 흩어졌다가 2천
여년이 지난 금세기에 다시 헤쳐모여 이스라엘을 건국하였다. 상상해 보시라! 2천여년간
을 흩어져 살던 민족이 다시 모여 나라를 재건하다니!!! 우리 민족 같으면 가능할까 ?
1948년 유엔의 승인을 받아 팔레스타인 땅에 건설한 이스라엘의 면적은 고작 2만여 평방km.
건국후 끊임없는 주변 아랍국들의 도전에 이스라엘은 국토를 잃기는 커녕 아랍땅을 야금야금
먹어들어 가는데...........
* 동쪽으로 요르단을 점령하여 <요르단강 서안(예루살렘-요르단강까지)>, 남쪽 이집트의 <시나
이>반도를 점령하여<가자지구>, 동북쪽 시리아를 점령하여 <골란고원>, 북쪽 레바논을 점령하
여 <레바논 안전지대> 등등, 유엔의 승인을 받지못한 이들 불법점령지를 합치면 이스라엘의 국
토는 세배로 확대된다(6만평방km).
6. 피지배인 팔레스타인人들.
* 요르단강 서안(West Bank)에 거주하는 "나라잃은" 팔레스타인人들은 항상 피해의식에 가득
차 웃음이 없고, 여차하면 폭력을 행사할 태세다. 그래서 우리일행은 성지 곳곳에서 만난 길거
리 기념품 상인들(팔레스타인)의 작은 기념품 하나라도 동정심에 사주기로 했다. 日帝때 우리
민족이 당했던 가슴아픈 상황을 되새기면서.
7. 이스라엘 독립기념관.
* <야드바솀 기념관>은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 비슷한 이스라엘의 독립기념관으로, 2차대전
당시 유럽에서 나치일당에 참혹하게 희생된 600여만명의 유대인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개스실에 끌려 들어가는 무고한 유대인들의 사진들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개스실에 들어가는 유대인들은 옷과, 신발, 장신구, 두발, 안경, 심지어 금이
빨까지도 모두 빼어놓고 들어간다. 왜? 나치들이 전쟁물자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쓸모없는 "육신"만 개스실에 들어가서 10분후면 시체가 되어 미리 엮어놓은 밧줄에 의해 끌려
나와 매장된다. 유대인 학살을 처음엔 총으로 쏘니 총알이 아깝고, 곡괭이로 찍으니 시간이
걸리는 등 비효율적이어서, 마지막으로 고안해 낸것이 개스실 학살이다. 독개스 한 줌이면
수만명을 눈 깜박할 사이에 학살할 수 있으니! 그런걸 보면 나치놈들은 왜놈들보다도 훨씬
지독했나 보다 !!!
* 전시된 사진을 일부 카메라로 찍고 있는데 늙은 관리인이 황급히 달려와 "왜 사진을 찍느냐?
일본인이냐?" 며 제지한다. "한국인인데, 우리가 과거 日帝에 당했던 상황과 비슷하여 동정심
에서 찍는다"고 했더니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많이 찍으라고 한다. "일본인에 무슨 감정이라
도 있느냐?"고 물으니, 1970년대에 일본의 적군파들이 아랍 게릴라와 연계하여 이스라엘
항공기 납치기도 사건이 있은 후 이스라엘의 대일감정이 좋지 않다고 귀띔한다.
8. 각국에서 영구귀국하는 유대인들.
* 기념관을 나오는데 일단의 유럽인들로 보이는 일행이 열심히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관광객인가 싶어 반갑다는 인사를 했더니, 소련에서 갓 귀국한 유대인 후손들이라고
한다. 일종의 조국 정착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조국에 전운이 감도니 세계각지의
유대인들이 생면부지의 할아버지 나라에 매일 공항이 비좁을 정도로 영구귀국을 서두르고 있
는 것이다. 이들과 기념사진도 한 컷 찰칵!
* 기념관 출구에 써있는 문구가 눈에 띄인다.
"우리의 역사가 있는 한 이 사실(나치학살)을 잊지말자!" 아마 유대인들은 몇천년이 지나
도 이 사실을 잊지 않을거다. 우리의 <독립기념관>에 이런 문구를 써 놓았다고 가정할 때, 우리
의 후손들이 "일제의 만행"을 몇 세대까지나 기억할까?
9. 까다로운 출국수속.
* 이스라엘의 출국수속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지 않나 여겨진다.
"체류중 누구를 만난적이 있습니까?, 일행중에 누가 다른사람을 만난 걸 본적이 있습니까?...."
등으로 시작되는 공항 수사관의 질문은 30여건은 될 성싶다. 몸수색까지 합치면 빨라야 한 시
간이다. 심문이 길어져 비행기를 타지 못하더라도 수사관은 아랑곳하지 않는단다. 대학생으
로 보이는 한 쌍의 젊은 일본인들에게 온갖 몸수색에도 성이 안차는지 <특별 취조실>로 데려
간다. 현지 가이드는 "저 사람들은 아마 오늘중 출국하지 못할 것 같다"고 귀띔한다.
* 하기야 이정도로 "철저한" 보안검사를 거치니 지금까지 이스라엘 항공기가 한 번도 납치되지
않았던 이유를 알만하다. 우리일행은 다음 목적지 그리스로 향했다.
10. 이스라엘 방문소감.
* 이번 이스라엘 여행에는 느낀점이 참 많았다.
척박한 국토에서 물과 흙을 "창조"하여 농산물을 수출하고, 3억 아랍인구로 둘러쌓인 6백만
이스라엘인들은 어린이까지도 목숨을 맡기고 싸운다. 조국에 전운이 감도니 각지에서 대대
로 살아오던 고국을 버리고 조국 이스라엘로 영구귀국을 서두른다. 공항검색이 저렇게 철저
하니 어찌 납치범들이 발을 붙일 수 있을까? 실로 유대인들에겐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없겠고, "살지 못할" 땅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모~모)
* 배경음악 "Secret Garden" /Chava Alberstein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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