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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직시하라' 메르켈 총리, 아베에 일침

모~모 2015. 3. 10. 23:26

 

        '과거사 직시하라' 메르켈 총리, 아베에 일침.

                                    (2015. 3. 10)

  

키 165㎝, 단단한 체구에 따뜻한 미소. 2015년 3월9일 오전11시, 일본 도쿄 중심가 하마리큐 아사히홀에 앙겔라 메르켈(60) 독일 총리가 들어섰다. 청중 수백명이 박수로 맞았다. 메르켈은 10년째 집권중인 독일의 첫 여성총리이자 첫 동독출신 총리다. 이날 새벽 하네다 공항에 내린 뒤 일본미래과학관 등을 돌며 빡빡한 일정을 치렀지만 활기차 보였다.

 

이날 메르켈 총리의 가장 중요한 일정은 오후 4시35분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하기로 돼 있는 정상회담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 회담에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오는 8월 아베 담화를 내놓기에 앞서, 같은 2차대전 패전국이면서 '속죄의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과 보조를 맞춰 평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는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

      에서 “과거정리는 화해를 위한 전제”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오는 6월 독일에서 열리는 G7정상

      회의를 앞두고 의장국 정상 자격으로 G7 회원국인 미국·캐나다·프랑스·영국·이탈리아를 거쳐 마지

      막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날 회담에 앞서 메르켈 총리는 아베에게 뼈아프게 들릴 말을 잇달아 했다. 독일의 탈(脫)원전 정책과 여성정책에 대한 강연이 끝나자, 한 청중이 "일본이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메르켈 총리는 “일본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즉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독일은 과거를 똑바로 마주 봤다"면서 "이웃 프랑스의 관용도 있었다"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본지와 통화한 한.일 정치학자들은 "현직 독일총리가 일본에 와서 '과거사를 반성하라'고 호소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날 메르켈 총리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강연장소로 택한 곳부터 그동안 위안부 보도를 둘러싸고 아베 정권과 극심한 갈등을 빚어온 아사히 신문사였다. 단순히 강연 요청만 받아들인 게 아니라, 강연에 앞서 아사히 보도국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기자들이 건넨 '독일 특집판'을 받아들고 활짝 웃었다.

 

메르켈 총리는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아사히신문은 위안부 보도 일부가 오보로 밝혀져 수세에 몰렸지만 여전히 일본의 지식인과 중산층 사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대 교수는 "최근 유럽사회에는 아베의 역사 인식과 언론관에 대해 심각한 불신이 형성되고 있다"면서 "메르켈 총리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지도자지만, 역사 인식은 아베 총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독일 지식인들과 언론의 건의를 받아들여 아사히에 힘을 실어주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은 아사히와 베를린 일·독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독일 언론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했다. 독일의 유력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8일 "아베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비판에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왔다. 메르켈 총리가 그 때문에 오히려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판적으로 보도해온 아사히 신문사에서 연설하길 바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일본사회 내부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각축하는 동아시아에서 독일이 결국 중국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에서 대표적인 친중파 리더로 꼽힌다. 집권 초기 잠깐 달라이라마 탄압에 항의해 중국정부와 언짢은 사이가 됐지만 곧 관계를 회복했다. 이후 작년까지 무역사절을 이끌고 일곱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반면 일본은 이번까지 세 차례 찾은 게 전부다. 마지막 방문은 2008년이었다.

 

"일본은 군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메르켈 총리가 일본의 야당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메르켈의 이같은 발언은 교도통신을 비롯한 복수의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메르켈 총리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와 도쿄에서 만나 면담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오카다 대표가 전했다.

"올해로 종전 70년이 되었지만 일본은 중국, 한국과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오카다의 말에 메르켈 총리는 "항상 과거와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또 "일본과 한국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으니 화해가 중요하다"며 "과거는 자신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이같은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 대해 "독일이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일관되게 보여준 참회와 반성이 유럽지역의 화해, 협력, 통합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라고 발표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우리 정부는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와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통해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신뢰를 쌓아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외교 전문가는 "메르켈 총리가 이번 방문을 통해 일본 지식인과 대중을 향해 자신의 소신을 밝힘과 동시에 베이징을 향해서는 '나는 아베 총리와 의견이 다르다. 또, 일본보다 중국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전후 70년을 맞아 일본 당국자들이 (메르켈 총리의 말처럼)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訪日 주요발언>

“나치 시대에 다른 나라가 겪은 끔찍한 경험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도 국제사회가 다시 독일을 받아들여 준 건 행운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독일이 자신의 과거를 똑바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평화적인 화해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일본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평화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세계질서 속에서 세계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